정호용 5·18 사과 없이 사망 마지막 생존자가 남긴 진실

신군부 핵심 5인방의 마지막 생존자

2026년 9월 13일, 정호용 전 국방장관이 9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호용 5·18 사과 없이 사망이라는 수식이 그의 마지막을 따라다녔습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관여한 신군부 핵심 5인방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이자 남은 진실 규명의 시작으로 다가옵니다.

정호용 5·18 사과 없이 사망

그의 군사정권 시절 행적

구분내용
출생1932년 대구 출생
육사 동기전두환, 노태우와 육사 11기
12·1250사단장으로 반란 가담 뒤 특전사령관
5·183·7·11공수여단 지휘, 광주 방문 네 차례
이후육군참모총장, 내무장관, 국방장관, 국회의원
형사 책임내란목적살인죄 징역 7년 확정 뒤 특별사면
사과 여부끝내 없음

표에서 보듯 그는 군사반란 직후 특전사령관이 되면서 광주에 투입될 3·7·11공수여단을 지휘하게 됩니다. 대법원은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하면서 공수여단에 행정 지원과 군수 지원을 한 점, 재진입 작전에 필요한 가발과 수류탄, 항공사진 등을 준비한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정호용 5·18 사과 없이 사망이라는 말은 단순한 별세 소식이 아니라, 반성 없는 권력의 끝을 보여줍니다.

동아일보는 이번 별세 소식에서 그가 생전에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아래 버튼에서 해당 기사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광주 방문과 조사위의 결론

정 전 장관은 2021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자신이 5·18 책임자로 지목된 것은 정치적 희생양 때문이며 억울하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조사위는 그가 광주 방문 때마다 작전 현안 회의를 주재했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했고, 특전사 전용 상황실도 별도로 운영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가 광주에 머문 시간은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네 차례, 약 81시간입니다.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을 하루 앞둔 5월 26일 밤에도 광주로 내려와 작전에 필요한 가발과 수류탄, 항공사진을 준비하고 부대원을 격려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조사위는 기존 형사재판에 포함되지 않은 희생자 7명을 추가로 확인하고 정 전 장관을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고발하기로 의결하기도 했습니다.

시민언론민들레신문은 빈소 안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과 조사위의 고발 결정 과정을 자세히 다뤼습니다. 이 기사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과 없이 남긴 책임

정 전 장관은 1997년 징역 7년이 확정된 뒤 그해 특별사면됐습니다. 이후 그는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군인연금 지급을 다시 요구하는 소송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헌정질서 파괴 범죄로 유죄를 받은 사람의 연금 지급을 제한한 조치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2019년 12월 12일에는 전두환, 최세창 등 신군부 인사들과 만찬을 즐겨 반성 없는 기념 오찬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5·18서울기념사업회는 정 전 장관의 죽음에 대해 학살의 책임이 끝난 것이 아니라며, 그가 대한민국 역사와 민주주의 앞에서 죄인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정호용 5·18 사과 없이 사망 소식은 5·18 단체에 큰 실망을 남겼습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한 후보가 그를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한 일도 반성 없는 인물을 공인으로 대접한 사례로 지적됐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피해자와 유족이 끝내 받지 못한 사과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은 그가 남긴 침묵의 역사입니다. 기록과 증언은 남아 있지만, 당사자의 입으로 진실을 확인할 길은 사라졌습니다.

정리하며 바라보는 진실

정호용 5·18 사과 없이 사망이라는 사실은 이제 기록으로 남습니다. 신군부 핵심 5인방이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5·18 당시 발포 명령이 어떻게 내려졌는지와 행방불명자 소재, 암매장 의혹 등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진실 규명은 이제 기록과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해야 할 이유

기록이 완전하지 않다면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공개와 조사를 요구해야 합니다. 정호용 5·18 사과 없이 사망이라는 비극이 단순한 과거로 묻히지 않도록, 5·18 정신을 기억하고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관심과 기억이 끝나지 않은 진실 규명의 마지막 증거가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정호용 전 장관이 5·18 당시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그는 광주에 투입된 부대가 현지 지휘 계통에 배속되어 자신에게 지휘권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과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작전 회의와 재진입 지원 정황을 확인하고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Q 정호용 전 장관의 형사적 책임은 어떻게 확정됐나요?

A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모의와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징역 7년이 확정됐고, 그는 그해 특별사면됐습니다.

Q 5·18 진실 규명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나요?

A 신군부 핵심 인물이 모두 사망하면서 당사자 대면 조사는 어려워졌습니다. 다만 조사위가 확보한 기록과 증언, 추가 희생자 고발을 바탕으로 진실 규명은 계속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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