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 신군부 사망 마지막 생존자 5인 모두 역사 속으로

정호용 신군부 사망, 신군부 핵심 5인의 종말

오늘 5·18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에 책임이 있는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94세였고,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옮긴 뒤 이날 오전 사망했습니다. 정호용 신군부 사망으로 5·18 당시 핵심 지휘자로 꼽힌 신군부 중요 인물 다섯 명이 모두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정호용 전 장관이 속했던 신군부 핵심 5인의 현재 상태를 표로 정리했습니다.

이름신군부 역할현재 상태
전두환12·12 반란과 5·18의 중심사망
노태우5·18 당시 군 수뇌부사망
이희성육군참모총장사망
황영시보안사령관사망
정호용특전사령관, 마지막 생존자2026년 9월 13일 사망
정호용 신군부 사망

정호용 전 장관은 왜 신군부 핵심으로 불렸나

정호용 전 장관은 전두환·노태우와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신군부 내부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대구의 50사단장으로서 반란에 가담했고, 이틀 만에 특전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후 5·18 때 특전사 예하 3·7·11공수여단이 광주에서 비무장 시민을 상대로 진압 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지휘 역할을 맡았습니다. 1988년 광주학살 책임자 규명을 위한 시민단체 조사에서도 그는 현장 지휘자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그는 이후 육군참모총장,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까지 지내며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 후보로 당선됐고, 5공 청산 국면에서 의원직을 내려놓았다가 1992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다시 국회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이력 때문에 정호용 신군부 사망은 단순한 전직 장관의 죽음이 아니라 5·18 진실 규명에 또 하나의 벽이 생겼다는 평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을 보다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기사를 아래에 연결했습니다.

재판과 진상조사가 확인한 책임

정호용 전 장관은 5·18 당시 광주에 여러 차례 내려가 작전을 지휘했다는 정황이 여러 기록에서 확인됩니다. 법원은 그가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유죄를 인정했고,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습니다. 같은 해 12월 전두환·노태우와 함께 특별사면됐으며, 광주 진압 공로로 받은 충무무공훈장은 1998년에 취소됐습니다.

그는 생전에 줄곧 자신이 5·18 당시 지휘계통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전사령관으로서 군수·행정 업무만 담당했고 발포와는 무관하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5·18 진상조사위는 그가 광주에서 작전 회의를 주재하고 특전사 전용 상황실을 운영했으며, 5월 27일 전남도청 재진입작전을 지원한 사실 등을 확인했습니다. 지휘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조사위는 2024년 활동을 마무리하기 전에 그를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다시 고발했습니다. 광주재진입작전 과정에서 추가 희생자 7명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발포 명령의 의문

정호용 전 장관은 사망하기 전까지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19년 12·12 기념일에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인사들과 서울 강남의 고급 음식점에서 오찬을 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2021년에는 5·18 진상조사위에 재조사 진정서를 냈지만 조사위는 그의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2025년 대선 때에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가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고 발표 5시간 만에 취소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실 정호용 신군부 사망 이후에도 5·18에 대한 질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초 발포가 누구의 명령으로 이뤄졌는지, 집단 발포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 암매장 의혹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두 미궁에 남아 있습니다. 특히 정호용 전 장관이 신군부 핵심 5인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 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진실 규명에 큰 걸림돌이 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뉴시스가 보도한 내용을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호용 신군부 사망은 한 시대의 마지막 장면일 뿐, 진실 규명의 끝은 아닙니다. 신군부 핵심 5인이 모두 사라진 지금, 남은 것은 유족과 시민들이 함께 기억하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일입니다. 5·18 정신을 지키고 희생자를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역사에 대한 우리의 몫입니다. 앞으로도 발포 명령을 둘러싼 의문과 암매장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기록을 접할 때는 발포 주체와 시점, 지휘 계통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신군부 핵심 5인에는 누가 포함되나요?

A 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 전 장관입니다. 이번 정호용 전 장관의 사망으로 다섯 명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Q 정호용 전 장관은 어떤 혐의로 처벌받았나요?

A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되어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확정받았고,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됐습니다.

Q 5·18 진상조사위가 다시 고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광주재진입작전 당시 병력 동원·지휘 사실이 확인되고 추가 희생자가 발견되면서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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