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4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의 핵심 책임자로 꼽힌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9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호용 5.18 진압 사망 소식은 신군부 핵심 5인방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유족은 가족장을 택했고, 빈소는 수원 아주대학교병원에 마련됐지만 부고 공지는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 누리집에는 35호실이 점검 중이라고 표시됐고, 부고 알림 모니터도 꺼져 있었습니다.

정호용 5.18 진압 사망, 어떤 인물이었나
| 구분 | 주요 내용 |
|---|---|
| 출생과 군 경력 | 육사 11기, 특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
| 5.18 관련 혐의 | 신군부 핵심 5인방, 광주 재진입 작전 지원, 내란목적살인죄 징역 7년 확정 |
| 사망 일시 | 2026년 9월 13일 오전, 향년 94세 |
| 진상 규명 | 대면 조사 없이 사망, 기록과 자료 중심으로 과제가 남음 |
정호용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뒤 특전사령관으로 임명됐습니다. 1980년 5월 18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황영시 계엄부사령관과 함께 신군부 핵심 5인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에 가발, 수류탄, 항공사진 같은 장비를 준비해 주고 부대원을 격려하는 방식으로 재진입 작전을 측면 지원한 것으로 대법원에서 인정됐습니다. 그런데도 정호용은 자신에게 광주 진압을 지휘할 권한이 없었다는 입장을 끝까지 유지했습니다.
프레시안은 정호용의 빈소가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5호실에 마련됐지만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족이 빈소 안내를 마다한 이유에 대해 연합뉴스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정호용 5.18 진압 사망은 발포 지휘 체계와 신군부 수뇌부의 개입 과정을 입으로 확인할 마지막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남겼습니다.
대면 조사는 끝내 못 했다
5.18진상조사위원회는 정호용이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약 81시간 동안 광주에 머물렀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정호용은 조사위 활동 기간에 서면 진술서만 두 차례 제출했고, 대면 조사에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2021년 자신의 책임을 다시 조사해 달라는 진정서에서 노태우 정부가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다며 억울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조사위는 작전 회의 기록과 특전사 전용 상황실, 광주 체류 기록,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 지원 사실 등을 근거로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24년에는 형사재판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던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 희생자 7명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다시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정호용 5.18 진압 사망으로 대면 조사 기회는 영영 닫히고 말았습니다.
신군부 핵심이 모두 사라진 뒤 남은 과제
전두환과 노태우는 2021년, 황영시와 이희성은 2022년 세상을 떠났고, 이제 정호용 5.18 진압 사망으로 신군부 핵심 5인방은 모두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5.18 진상규명은 이제 사람이 아니라 기록과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발포 명령의 지휘 체계, 행방불명자의 소재와 암매장 의혹, 민간인 집단살해의 책임 소재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까지 사망하면서 5.18 당시 신군부 핵심 관계자에게 직접 진실을 확인하고 책임 있는 사죄를 요구할 기회가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발포 지휘 체계와 행방불명자 소재 등 아직 규명되지 않은 과제를 기록과 자료를 통해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5.18 유공자들은 신군부 핵심 인물이 끝내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것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KBS가 이 같은 비판을 보도했습니다. 관련 보도는 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반성 없는 삶의 마지막 장면들
정호용은 2019년 12월 12일 12.12 군사반란 40년이 되는 날 전두환, 최세창 등 신군부 인사들과 서울의 한 고급 음식점에서 오찬을 즐겨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5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그를 대선 상임고문으로 임명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당일 취소한 일도 있었습니다. 정호용 5.18 진압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끝나지 않은 과제를 다시 마주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정호용은 왜 5.18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나요?
A: 정호용은 자신에게 작전 지휘 권한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5.18진상조사위원회는 그가 여러 차례 광주에 머물며 재진입 작전을 지원한 사실을 확인했고, 대법원도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7년을 확정했습니다.
Q: 5.18 진상 규명은 이제 어떻게 되나요?
A: 핵심 당사자들이 모두 사망하면서 기록과 자료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5.18기념재단과 조사위는 발포 지휘 체계와 행방불명자 소재 등 남은 과제를 문서와 증언을 통해 끝까지 밝혀야 한다고 입장을 모았습니다.
Q: 정호용 사망 소식에 5.18 유공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A: 신군부 핵심이 끝내 사과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직접 사과를 요구할 기회가 사라진 만큼 기록으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