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2026년 9월 13일 향년 94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신군부 핵심 5인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정호용 5.18 사망 소식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을 기다려 온 많은 이들에게 깊은 아쉬움과 함께 분노도 안겼습니다. 정호용 전 장관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입니다. 하나회를 통해 신군부의 핵심으로 활동했고, 반란 직후 육군 특전사령관에 임명되며 5.18 진압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정호용 전 장관은 당시 육군 특전사령관으로 재직 중이었고, 특전사 소속 공수부대는 광주 곳곳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유혈 진압을 자행했습니다. 무장한 공수부대가 민간인에게 발포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장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정호용은 1981년 대장으로 진급하고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전두환 정권에서 내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역임하며 빠르게 출세했습니다.
정호용 5.18 사망 신군부 핵심 5인 요약
신군부 핵심 5인의 당시 직책과 역할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름 | 당시 직책 | 5.18 관련 역할 |
|---|---|---|
| 전두환 | 보안사령관 | 반란 주도 및 진압 총괄 |
| 노태우 | 수도경비사령관 | 진압 작전 지원 |
| 정호용 | 특전사령관 | 공수부대 지휘 및 광주 재진입 지원 |
| 이희성 | 계엄사령관 | 계엄 확대 및 작전 지휘 |
| 황영시 | 계엄부사령관 | 진압 작전 참모 지원 |
정호용 전 장관은 1996년 과거사 청산 당시 구속되었고,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모의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징역 7년을 확정받았습니다. 대법원은 정호용이 공수여단에 행정과 군수지원을 제공하고, 전교사령관에게 공수여단의 특성과 훈련 상황을 알려주는 등 광주 재진입 작전의 성공을 위해 측면에서 지원했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나 정호용은 당시 공수부대가 다른 지휘 계통에 배속되어 있어 자신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할 권한이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그의 태도는 당시 많은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습니다.

끝나지 않은 책임 논쟁
5.18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정호용 전 장관이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약 81시간 동안 광주에 머물렀던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체류가 아니라 진압 작전에 깊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정황입니다. 그럼에도 정호용은 조사위의 대면 조사에 끝내 응하지 않고 미국으로 출국했으며, 서면으로 제출한 두 차례 진술서에서도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진실을 마주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스스로 그 기회를 외면한 셈입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정호용 전 장관을 상임고문으로 임명했다가 논란이 거세지자 당일 임명을 취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과거 역사의 핵심 책임자를 정치적 인사로 기용하려는 시도에 많은 시민들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5.18 유공자들이 정호용 5.18 사망 소식에 대해 끝까지 사과하지 않고 떠난 점을 비판하는 이유도 그만큼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까지 남긴 역사적 과제
정호용 5.18 사망으로 신군부 핵심 5인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직접 당사자들이 사라지면서 진실 규명의 창구도 닫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법원 판결문과 진상조사위원회 기록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역사적 사실은 지속적으로 검증될 수 있습니다. 특별사면 이후 정호용은 대구 지역에서 13대와 14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5.18에 대한 어떠한 사과도 없이 정치 활동을 이어간 점은 당시에도 큰 비판을 받았고, 이후 보수 정치권과의 인연을 끝까지 유지했습니다.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호용 전 장관의 빈소는 부고 알림 모니터가 꺼진 채 공지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존재 자체를 지우고 싶은 듯한 이러한 행보는 5.18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정리하며
정호용 5.18 사망은 한 인물의 죽음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아직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문제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핵심 당사자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추가적인 증언 확보는 어려워졌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남긴 역사적 기록과 희생자들의 아픔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며, 후세대가 이 기록을 바탕으로 올바른 역사 인식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신군부의 잘못된 과거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5.18의 의미를 계속 기억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정호용 전 장관이 사망하면서 5.18 진상 규명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나요?
A. 진상조사위원회가 이미 확보한 기록과 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진상 규명 작업은 계속됩니다. 다만 핵심 당사자의 직접 증언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어 기록과 증언 사이의 간극은 분명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Q. 정호용 전 장관은 어떤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나요?
A.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확정받았고,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되었습니다.
Q. 정호용 전 장관의 빈소는 어디이며 왜 부고가 공개되지 않나요?
A.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습니다. 부고 알림 모니터가 꺼져 있고 장례식장 누리집에도 공지되지 않아, 가족이 고인의 이력을 고려해 조용히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