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방송된 EBS 프로그램에서 연 매출 1400억 원을 일군 김영식 빵만장자의 이야기가 공개됐습니다. 어린 시절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수돗물을 마셨던 소년이 하루 30만 개의 빵을 생산하는 사업가가 되기까지, 그 과정을 한눈에 살펴보겠습니다.
| 구분 | 내용 |
|---|---|
| 인물 | 김영식 빵만장자 |
| 주요 성과 | 연 매출 약 1400억 원, 하루 최대 30만 개 생산 |
| 대표 제품 | 연세우유 생크림빵, 반갈샷 열풍 |
| 어린 시절 | 달동네 5형제 장남, 14살 소년공 |
| 특이 이력 | 공무원, 사하라 사막 중동 근무 6년 |

빵 한 조각이 처음이었던 소년
김영식 빵만장자는 달동네에서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 오지 못했고, 점심시간마다 운동장 수돗물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청소를 하다 바닥에 떨어진 빵 조각을 발견해 먼지를 털고 먹은 것이 인생 첫 빵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소년에게 가장 큰 소원은 마음껏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나중에 그가 빵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밑바탕이 됐습니다. 배고픈 기억이 있는 사람이 만든 빵이라서 그런지, 그의 제품에는 많이 먹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연세우유 생크림빵은 크림을 아낌없이 넣어 반으로 갈랐을 때 크림이 흘러넘친다는 반응을 얻었습니다.
소년공에서 공무원, 그리고 사막까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14살에 소년공이 되었습니다. 첫 월급 3000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어머니에게 전했습니다. 새까만 손이 부끄러워 주머니에 숨기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되어야 했던 시간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짐작됩니다. 교복 입은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동생들을 생각하며 일을 이어갔습니다.
방송에서 김영식 빵만장자는 어린 아들을 일터로 보내며 오열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다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듯, 그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감정이 배어 있었습니다. 가난이 어린아이까지 어른으로 만들었지만, 그 시간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단칸방 생활 속에서도 마을 우물가 옆 가로등 불빛을 의지해 공부한 끝에 합격했습니다. 당시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지금의 9급에 해당하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향해 공무원 자리를 내려놓고 중동 건설 붐을 따라 사하라 사막으로 떠났습니다. 당시 한 달 60만 원을 벌 수 있는 현장 일이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고향의 봄이 흘러나오자 200여 명의 근로자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서장훈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날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6년을 버티며 모은 돈은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큰돈이었습니다.
40대 후반에 시작한 제빵 사업이 만든 신화
이후 여러 인생의 굴곡을 겪은 그는 40대 후반에 제빵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소년이 빵을 만드는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김영식 빵만장자가 만든 연세우유 생크림빵은 빵보다 크림이 더 많다는 평가를 받으며 출시 직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소비자들이 빵을 반으로 갈라 크림을 확인하는 반갈샷이 SNS에서 유행하면서 편의점 오픈런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1초에 1개씩 팔리는 기록을 세웠고, 하루 생산량은 30만 개에 이릅니다. 특히 MZ세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편의점에서 제품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현재 2500평과 성남에 마련한 2000평 규모의 공장 두 곳을 운영하며 편의점, 대형마트, 기내식, 군부대 PX, 스타벅스 등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크림빵을 포함해 햄버거와 마카롱 등 생산 제품만 150종이 넘습니다. 방송에서는 반도체 근무복처럼 보이는 위생복을 입은 직원들이 반죽부터 크림 주입까지 꼼꼼하게 작업하는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크림은 저울로 정확한 양을 측정해 주입됐고, 엄청난 물량이 쏟아지는 현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방송에서 그는 스스로를 빵만장자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별명처럼 빵을 향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직접 빵을 반으로 가르며 크림이 가득한 속을 보여준 장면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김영식 빵만장자는 크림빵보다 단팥빵을 좋아해 소량만 시식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졌습니다. 빵을 좋아하는 서장훈이 고삐 풀린 듯 먹는 모습과 대비되며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성공 뒤에 담긴 의미
김영식 빵만장자의 성공은 단순히 큰돈을 번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난 때문에 빵 한 조각도 쉽게 먹지 못했던 소년이, 이제는 많은 사람의 아침과 간식을 책임지는 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가 겪은 역경을 생각하면 1400억 원이라는 숫자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특히 40대 후반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점은 나이가 도전을 막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앞으로도 그의 빵이 더 많은 곳에서 사랑받고, 어려운 환경에서 꿈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이야기가 되길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김영식 빵만장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A. 달동네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나 14살에 소년공이 된 뒤 공무원과 중동 근무를 거쳐 40대 후반 제빵업에 뛰어든 사업가입니다. 연 매출 약 1400억 원을 기록하는 크림빵을 만들었습니다.
Q. 연세우유 생크림빵이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빵보다 크림이 많다는 인상적인 비주얼과 함께 SNS에서 반갈샷이 유행하면서 편의점 오픈런까지 이어졌습니다.
Q. 하루 생산량은 어느 정도인가요?
A. 현재 하루 최대 30만 개를 생산하며, 2500평과 2000평 규모의 공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