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26년 8월 25일, 충북 보은군 법주사 다비장 연화대에서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다비식이 엄수되었습니다. 지난 22일 제주 서귀포 해상에서 구조된 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원적에 든 명진스님은, 세수 76세 법랍 52년의 수행자로서 불교계와 시민사회에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이번 다비식은 단순한 장례 의식을 넘어 시대정신을 기리는 자리였습니다.
명진스님 다비식, 그 현장의 기록
오후 3시쯤 법주사 다비장 연화대에서 거행된 다비식은 명진스님의 법구를 불태우는 불교식 화장 의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다비식에는 법주사 주지 정덕스님이 호상을 맡았으며, 수많은 신도와 시민들이 명진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다비식은 고인의 생애와 수행 정신을 기리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 항목 | 내용 |
|---|---|
| 일시 | 2026년 8월 25일 오후 3시 |
| 장소 | 충북 보은군 법주사 다비장 연화대 |
| 법구 이송 | 서울 봉은사에서 법주사로 이동 |
| 호상 | 법주사 주지 정덕스님 |
앞서 오전에는 서울 강남구 봉은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명진스님의 영결식이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되었습니다. 이 영결식에는 종교계와 시민단체, 신자 등 수백 명이 모여 고인을 기렸습니다. 명진스님의 은사인 탄성스님 제자들로 구성된 탄성문도회 회장 도공스님과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주경스님,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공동 장의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영결식은 명종이 다섯 차례 울리며 시작됐고, 이어 삼귀의례, 영결법요, 행장 소개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각계의 영결사와 추도사, 헌화가 이어진 뒤 발인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고인을 추모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도 이어졌는데, 도올 김용옥 선생은 추도시를, 소리꾼 장사익은 노래로 명진스님을 기렸습니다.

명진스님의 생애와 사회적 발자취
명진스님은 1980년대부터 다양한 사회문제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2010년 조계종이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총무원과 갈등을 빚다 2017년 제적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후 법정 소송까지 이어졌고, 올해 초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 승적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도 명진스님은 소신 있는 목소리를 잃지 않았습니다.
염무웅 전 국립한국문학관장은 40년 전 해인사에서 고인과 만난 인연을 회상하며, 제도와 관행이 그를 가두지 못했고 억울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했다고 말했습니다. 기본선원 조실 영진스님은 추도사에서 종단 개혁을 위해 펼친 사자후가 종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며, 파도가 되어 다시 오시라고 기렸습니다.
명진스님은 생전 제주에서 프리다이빙을 즐겨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22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하예포구 해상에서 물에 떠 있는 상태로 구조되었습니다. 외상이나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결국 숨을 거두었습니다. 세수 76세 법랍 52년의 생애였습니다.
다비식의 의미와 추모 물결
다비식은 불교에서 법구를 불태운 뒤 유골을 거두는 화장 의식으로, 명진스님의 경우 단순한 의식을 넘어 시대정신의 마지막 헌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영결식에 참석한 수백 명의 인파는 정권의 탄압과 종단의 만류도 어쩌지 못한 시대정신을 기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와 세월호 유가족 정부자 씨 등도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번 법주사 명진스님 다비식은 불교계뿐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에 큰 여운을 남겼습니다. 명진스님의 삶은 외압에 굴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낸 수행자로서, 정의와 개혁을 향한 의지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다비식이 끝난 뒤에도 추모의 발길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명진스님 영결식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법주사 명진스님 다비식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와 고인의 행적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명진스님 다비식이 남긴 교훈
명진스님의 다비식은 우리에게 권력에 굴하지 않는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승적 회복을 위해 소송까지 불사했고, 결국 올해 항소심에서 승소했습니다. 이런 투지와 신념은 불교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법주사 명진스님 다비식은 단순한 장례가 아닌, 시대정신을 기리는 의식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명진스님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의 용기와 소신은 우리 사회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법주사 명진스님 다비식이라는 역사적 순간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생각
오늘의 다비식을 바라보며, 한 수행자가 남긴 발자취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살아 숨 쉰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명진스님의 정신은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질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우리는 어떤 시대정신을 만들어갈지 돌아보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명진스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A: 명진스님은 1980년대부터 사회문제에 참여하며 불교 개혁을 주도한 수행자입니다. 봉은사 전 주지로, 종단과의 갈등 끝에 제적과 승적 회복이라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끝내 소신을 지킨 인물입니다.
Q: 다비식은 어떤 의식인가요?
A: 다비식은 불교에서 법구를 불태운 뒤 유골을 거두는 화장 의식입니다. 명진스님의 다비식은 법주사 다비장 연화대에서 엄수되었으며, 영결식 이후 진행되었습니다.
Q: 명진스님의 승적이 회복된 배경은?
A: 2017년 조계종에서 제적 처분을 받았지만, 법정 소송을 통해 올해 초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 승적을 되찾았습니다. 이는 외압에 굴하지 않고 법적 절차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켜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