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제주 해상에서 입적한 명진스님의 영결식이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엄수됐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과 시민사회가 함께 마련한 이번 영결식에는 불교계는 물론 종교계, 문화예술계, 시민사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명진스님은 세수 76세, 법랍 52년으로 1969년 출가 이후 조계종 종단 개혁 운동을 주도하고 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상징적인 종교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명진스님 영결식 핵심 정리
명진스님 영결식의 주요 내용을 한눈에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내용 |
|---|---|
| 일시 | 2026년 8월 25일 오전 |
| 장소 | 서울 강남구 봉은사 |
| 입적 | 8월 22일 제주 서귀포시 하예포구 인근 해상 |
| 세수·법랍 | 세수 76세, 법랍 52년 |
| 추후 일정 | 법주사 다비식, 49재 후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 |
이번 영결식은 단순한 장례 절차를 넘어, 한 평생을 수행과 사회 참여로 살아온 스님의 삶을 기리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공동 장의위원장을 맡은 인사들의 면면에서도 스님이 종교와 사회를 아우르는 큰 울타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결식 참석과 추모 물결
명진스님 영결식 현장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불교계에서는 스님의 은사인 탄성스님 제자 모임인 탄성문도회의 도공스님이 공동 장의위원장을 맡았고,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주경스님도 자리했습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유홍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공동 장의위원장으로 참여했으며, 법주사 주지 정덕스님이 호상을 맡아 스님의 법구를 운구하는 과정을 도왔습니다.
도공스님은 영결사에서 스님은 말에 거침이 없고 행동에 물러섬이 없었던 분이었으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던 손길 같은 분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이어 스님에게는 사회운동도 종단개혁도 모두 수행의 한 방식이었고, 수행이 깊어지면 자비심도 함께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을 전하며, 그런 의미에서 명진스님의 수행은 아무나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습니다.
40년 전 해인사에서 스님과 인연을 맺은 염무웅 전 국립한국문학관장은 추도사에서 스님은 76년 인생 가운데 52년을 승복 입은 비구로 지냈지만, 승복의 격식에도 사찰 건물의 고고함에도 갇히지 않은 자유인이었다고 돌아봤습니다. 기본선원 조실 영진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을 위한 승려대회 당시 스님이 가사를 벗어 부처님 전에 바치며 종단개혁을 위해 펼친 사자후는 종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이날 영결식에서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영산의 춤’이라는 시를 헌사했고, 소리꾼 장사익이 노래로 스님을 배웅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와 세월호 유가족 정부자 씨 등도 참석해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종교와 사회 각계 인사가 함께한 모습은 명진스님이 단순한 불교계 인사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울림을 준 인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명진스님의 생애와 발자취
명진스님은 1969년 출가하여 52년간 수행과 사회 활동에 매진해 왔습니다. 1990년대 조계종 종단 개혁 운동을 주도하며 한국 불교의 현대화와 정화에 앞장섰고, 이후에도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수행과 사회 참여를 분리하지 않고, 모두가 하나의 흐름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스님의 뜻은 영결식에 참석한 많은 이들의 추모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특히 스님은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함께 애도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한국 사회의 아픈 곳곳을 어루만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민사회 인사들의 추모 발길도 이어졌으며, 영결식장은 추모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다비식과 추후 일정 안내
명진스님 영결식 후 스님의 법구는 출가 본사인 충북 보은군 법주사로 운구됐습니다. 이날 오후 법주사에서 다비식이 엄수될 예정이며, 다비식 후에는 49재를 거쳐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묘지의 민주열사묘역에서 영면에 들게 됩니다.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되는 것은 스님이 한국 민주화와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한 삶을 기리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명진스님의 입적 소식은 지난 22일 제주 서귀포시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물에 떠 있는 채로 구조되면서 알려졌습니다. 당시 스님은 프리다이빙을 배우던 중이었으며, 구조 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원적에 들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많은 이들이 충격과 애도를 표했습니다.
명진스님 영결식 소식은 각종 언론을 통해 상세히 전해졌습니다. 연합뉴스는 봉은사에서 열린 영결식 현장과 참석자들의 추모 모습을 상세히 보도했으며, MBC 뉴스도 스님의 생애와 입적 경위, 다비식 일정 등을 전했습니다. 명진스님의 삶과 사상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래에서 관련 보도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명진스님 영결식이 남긴 의미
명진스님 영결식은 한 스님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종교인의 역할과 수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수행자로서의 깊은 내면 생활과 사회 참여자로서의 적극적인 외면 활동을 모두 소화해 낸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말과 행동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특히 스님은 승복의 격식이나 사찰의 고고함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영결식에 참석한 인사들도 불교계에 한정되지 않았고, 종교와 문화,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폭넓은 추모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명진스님 영결식을 단순한 장례식이 아닌, 하나의 사회적 추모 운동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명진스님의 장례 일정은 49재까지 이어지며, 이후 모란공원묘지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됩니다. 스님의 정신과 가르침은 묘역에 잠들더라도, 그가 심어 놓은 종단 개혁과 사회 정의의 씨앗은 계속해서 자라날 것입니다. 명진스님 영결식을 끝으로 스님의 육신은 떠나지만, 스님이 남긴 메시지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명진스님 영결식은 어디서 열렸나요?A: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25일 오전에 열렸어요. 많은 불교계와 시민사회 인사들이 참석해 스님을 배웅했습니다.
Q: 명진스님의 다비식은 언제 어디서 하나요?
A: 영결식 후 법구를 충북 보은군 법주사로 운구해, 25일 오후에 다비식을 엄수할 예정입니다.
Q: 명진스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A: 1969년 출가해 52년 법랍 동안 조계종 종단 개혁을 주도하고 사회 현안에 적극 참여한 수행자입니다. 세월호 유가족 등 약자의 편에 서는 데 주저함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