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의 증조부가 한국 최초 개업의인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 의혹 논란이 뜨겁습니다. 하영은 KBS 예능 프로그램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밝혔고, 이후 증조부의 정체가 확인되면서 각종 의혹이 쏟아졌습니다. 하영은 방송에서 증조할아버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배워온 뒤 한양에서 최초로 서양식 병원을 개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고종 황제도 진료했다고 밝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의사 안상호는 1872년에 태어나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인물로,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내선일체의 모범 사례로 소개된 기록이 알려지며 친일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목차
의사 안상호 주요 이력 한눈에 보기
| 구분 | 내용 |
|---|---|
| 출생 | 1872년 |
| 학력 |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 졸업 |
| 자격 | 한국인 최초 일본 의사 자격증 취득 |
| 주요 활동 | 순종 전의, 이왕직 촉탁의, 한성의사회 회장 |
| 논란 | 친일 의혹, 고종 독살설 연루 |
의사 안상호는 어떤 인물인가
의사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1904년 귀국한 뒤 지석영이 세운 의학교와 동담한의학교에서 서양의학을 강의했고, 서울 종로3가에 개인 진료소를 마련해 의료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후 순종의 전의와 이왕직 촉탁의를 지냈고, 일본인 의사 단체인 경성의사회에 대항해 한성의사회 회장을 맡는 등 한국인 의사들의 권익을 위해 힘썼습니다. 한국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했다는 점에서 의학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조선인 의사들이 일본인 의사들보다 낮은 대우를 받던 상황을 생각하면, 한성의사회를 이끌며 조선인 의사들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의미 있는 활동이었습니다.

내선일체 모범 사례로 소개된 배경
의사 안상호의 친일 논란은 1918년 매일신보 기사에서 출발합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는 완전히 내지화된 의사 안상호씨의 가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의사 안상호는 자신이 일본인과 같다며 옷도 일본 의복을 입고 아내도 일본 여성이며, 조선 사람과 달리 두루마기 한 벌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집에서는 조선 말을 거의 쓰지 않아 아이들도 자연히 조선 말을 모르고, 일본인과의 교류가 더 많다고 했습니다. 이 기사는 조선에 처음으로 서양 의술을 수입해 성공한 의사 안상호가 일선동체의 가정을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매일신보는 이 같은 생활상을 내선일체의 바람직한 표본으로 소개했습니다. 성공한 조선인 의사가 일본식 생활양식을 받아들이고 일본인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부각해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종 독살설과 의사 안상호의 연관성
의사 안상호는 1919년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급히 진료했지만 끝내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이방자 여사의 수기에는 조선총독부가 시의인 의사 안상호에게 독살을 명령했다는 소문이 기록되었고, 이방자 여사는 뜻밖의 소문을 들었다며 해당 내용을 수기에 남겼습니다. 궁내부 사무관이었던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도 회고록에서 관련 유언비어를 전했습니다. 이런 독살설은 당시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소문이었지만, 실제로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학계에서는 고종 독살설을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을 지낸 이정은 박사는 성공한 한국 남성이 일본인 여성과 가정을 이룬 점에서 의사 안상호가 내선일체 모범 사례로 꼽혔고, 일반 대중 사이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보니 독살설에 연루된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친일 행적 의혹의 진실은 무엇인가
의사 안상호가 친일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에 몸담았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대정실업친목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기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총재가 회장을 맡아 설립한 실업인 단체였습니다. 이완용, 조중응, 송병준 등 당대 친일 인사들이 다수 회원으로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의사 안상호가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는 명확한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명단에도 의사 안상호는 포함되지 않았고, 일제에 협력해 독립운동을 방해하는 등 악질적이고 주도적인 행위를 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서도 관련 자료만으로 의혹의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역사 기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사 안상호가 과연 친일 인물인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일본식 생활을 받아들인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영 측 입장과 향후 과제
하영의 소속사는 의사 안상호가 증조부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온라인상에서 제기된 친일 행적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반박 내용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하영은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증조부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하영의 향후 행보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의사 안상호에 대한 평가와 생각
의사 안상호의 삶은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 상황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양의원을 개원하고 한성의사회를 이끌며 의료 발전에 기여한 업적은 분명히 평가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당시 일본인과 같은 생활을 하며 내선일체의 모범 사례로 활용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는 당시의 시대적 맥락과 기록의 신뢰성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의사 안상호에 대한 논란은 단순한 친일 인물 규정을 넘어, 일제강점기 조선인 지식인이 마주한 복잡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추가적인 역사 자료가 발굴된다면 더 명확한 사실 규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그때까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의사 안상호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됐나요?
A: 아닙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의사 안상호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친일단체에 몸담았다는 기록은 있지만 악질적이고 주도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Q: 의사 안상호와 고종 독살설은 사실인가요?
A: 이방자 여사의 수기와 이왕궁비사에 관련 소문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는 없습니다. 학계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Q: 하영 측의 공식 입장은 무엇인가요?
A: 하영의 소속사는 의사 안상호가 증조부가 맞다고 인정하면서 친일 행적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