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이 자신의 집안 내력을 공개했다가 예상치 못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7일 방송된 KBS2 예능 프로그램에서 4대째 의사 집안임을 자랑스럽게 밝힌 것인데요. 그런데 방송 이후 하영 집안의 증조부가 친일 단체의 간부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광복절을 앞두고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하영 집안의 증조부는 안상호라는 인물로,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당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했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기도 했습니다. 방송에서 하영은 증조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까지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하며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이 자랑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목차
하영 집안 논란의 핵심 정리
| 구분 | 내용 |
| 논란 시작 | KBS2 예능에서 4대째 의사 집안 자랑 |
| 증조부 | 안상호, 일본 유학 출신 의사 |
| 핵심 문제 | 대정친목회 평의원 활동 친일 기록 |
| 추가 논란 | 일선동화 선전 모델, 매일신보 인터뷰 |
| 현재 상황 | 재산 환수 법안 시행 앞두고 검증 가능성 |
이번 논란은 단순히 과거 행적이 문제가 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하영 집안이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의 출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 법안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하영 집안의 진실은 무엇이고, 향후 어떤 전개가 예상되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증조부 안상호, 의사에서 친일 인사가 되기까지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해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이른 시기에 서양 의학을 도입한 선구자였던 셈입니다. 그의 의술은 고종 황제의 신임을 얻을 정도였고, 실제로 고종이 쓰러졌을 당시 진료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하영 집안은 수십 년간 의사 집안으로서의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1910년대 이후입니다. 안상호는 1916년 11월 29일 결성된 대정친목회에 평의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대정친목회는 이완용을 비롯한 조선 귀족과 대자본가들이 주축이 된 단체로, 표면적으로는 내선 융화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배 정책을 적극 지지한 친일 단체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단체를 명백한 친일 단체로 규정하고 있으며, 평의원은 회장, 부회장, 이사 등과 함께 조직 내 간부 직책에 해당합니다.
안상호의 친일 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일선동화 모델 사례로 소개되며 일본인 아내와의 생활 방식을 직접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1918년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조선 사람과 상종할 일이 없어 불편한 것이 없다고 말하며 일본인 공동체와 주로 교류한 생활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역시 그의 가정을 일본인 공동체와 주로 교류한 사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1927년 발간된 이완용 추모록에는 이재명 의사의 습격으로 치명상을 입은 이완용을 완쾌할 때까지 매일 진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영 집안 재산 환수 법안, 적용 가능성은
하영 집안의 논란이 단순한 역사적 사실 규명을 넘어 재산 문제로 번지고 있는 이유는 최근 정부의 친일 재산 환수 법안 때문입니다. 정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을 공포했고, 오는 12월 3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법안의 핵심은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 개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입니다.
2010년에 활동을 마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다시 구성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새로운 조사위는 친일재산 자체는 물론 이미 처분된 경우 그 대가까지 환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6월 22일 조사위 설립준비단을 출범시키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안상호가 법률상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고, 그가 일제강점기에 취득한 특정 재산이 확인되며, 그 재산이 후손에게 이어진 경로까지 추적된다면 하영 집안도 실제 재산 환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부활하는 조사위가 안상호를 새 조사 대상으로 삼을지가 핵심 관건입니다.
하영 측 대응과 확산되는 논란
하영 집안 논란이 커지자 소속사 비스터스 엔터테인먼트는 처음에 온라인상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하지만 관련 역사적 기록들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첫 대응은 오히려 논란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국 소속사는 하루 만인 지난 11일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올랐던 기록을 공식 확인하고, 기존 입장을 번복한 뒤 성급했던 대응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여기에 하영의 부친이 언론 인터뷰에 나서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는 조부가 의친왕의 권유로 귀국을 결심했고 한성의사회 초대회장을 지냈다는 설명을 하며 안상호의 친일 가능성을 부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과정에서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친일합방이라고 표현한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의 공분을 샀습니다.
또한 부친이 고종 독살설을 부인하기 위해 인용한 책의 저자도 문제였습니다. 의사 정구충이 1985년 출간한 한국 의학의 개척자를 근거로 들었는데, 정구충은 조선군사후원연맹과 배영동지회, 조선임전보국단 등의 발기인 및 평의원으로 활동하며 침략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기고한 친일 인물이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를 친일인명사전 교육·학술 분야에 수록했습니다. 게다가 정구충의 친형 정구창은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와 동일한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어 해명할수록 꼬이는 양상입니다.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에 안상호 전의 송덕비가 공식 분류돼 있다는 사실도 지난 11일 확인되었습니다. 시흥군 안양리, 현재의 안양시 시장에 위치한 이 송덕비는 안상호 소유 토지의 소작인들이 세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도는 친일문화잔재 청산을 위해 역사전문가팀을 꾸려 이 비석을 분류하고 안내판까지 설치한 상태입니다.
이처럼 하영 집안과 관련된 친일 기록은 하나둘이 아닙니다. 단순히 한 개인의 행적이 아니라, 집안 전체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사회와 깊이 교류하며 살아온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영이 방송에서 자랑했던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내력은 이제 그 시작점이 식민지배에 협력한 대가로 형성된 것일 수 있다는 의문과 함께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안상호의 고종 독살 가담설은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안상호가 고종이 쓰러졌을 당시 진료한 기록은 있지만, 독약 투여 주장을 입증할 직접적인 근거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영 측과 부친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반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영 집안, 앞으로 어떻게 될까
현재로서는 하영 집안의 향방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오는 12월 조사위가 구성되면 안상호에 대한 조사가 새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친일 반민족 행위 여부, 재산 취득 경위, 후손에게로의 승계 과정까지 전반적인 검토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연예인의 가족사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친일 청산이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광복 81주년을 앞두고 하영 집안 논란은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가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평가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FAQ
Q. 하영 소속사가 처음에 사실무근이라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소속사는 온라인상 의혹이 나왔을 때 관련 기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즉각 부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이 확인되면서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했습니다.
Q. 안상호의 재산이 실제로 환수될 가능성이 있나요?
A. 현재 법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안상호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고, 일제강점기 취득한 재산이 후손에게 이어진 경로가 확인된다면, 오는 12월 발족하는 조사위에서 환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Q. 고종 독살설은 사실인가요?
A.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안상호가 고종이 쓰러졌을 당시 진료한 기록은 있지만, 독약 투여 주장을 입증할 직접적인 근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