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오전 3시 30분,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향년 91세로 별세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상도동계 핵심 인물로 통한 분입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고, 여야를 가리지 않은 최형우 조문 행렬이 밤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고인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과 고락을 함께했고, 불도저식 추진력으로 문민 정부 초기 개혁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도 민주주의가 반드시 온다는 확신을 잃지 않았다는 증언이 많습니다.

| 항목 | 내용 |
|---|---|
| 고인 |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
| 별세 | 2026년 10월 24일 오전 3시 30분 |
| 빈소 |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 |
| 장지 | 국립4.19민주묘지 |
| 발인 | 10월 27일 오전 8시 |
최형우 조문이 이어지는 이유
표에서 보듯 고인의 장례는 사흘간 치러집니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이며, 영면은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이뤄집니다. 25일 일요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빈소를 찾을 예정이고, 오후에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정점식 원내대표가 최형우 조문 일정에 나선다고 알려졌습니다. 원로 정치인들이 보낸 조화도 빼곡했습니다. 아들 최제완 씨는 아버지가 집에서 술을 조금 드시고 아빠의 청춘 노래를 부르며 웃긴 춤을 추셨다고 전했습니다. 정치인으로서는 엄격했지만 가정에서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아버지였다는 것입니다.
고인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공업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신민당에서 정치 생활을 시작해 6선 의원을 지냈고, 통일민주당 부총재와 정무제1장관, 내무부 장관을 거쳤습니다. 김동영 전 정무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릴 만큼 김 전 대통령을 지키는 데 앞장섰고,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으로 꼽힙니다. 대한민국헌정회장, 4.19혁명공로자회장, 민주화추진협의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지는 점도 그 상징성을 보여줍니다. 정치권 인사들이 최형우 조문 현장을 찾으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뒤 상도동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계보의 인사들도 함께 조문에 나섰습니다. 권노갑 이사장, 김덕룡 이사장, 정대철 회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아 여야의 경계를 허문 장례가 됐습니다. 이른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정치권에서 쉽게 볼 수 없습니다. 그만큼 고인이 가진 신뢰와 인품이 컸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고문과 가택연금 속에서도 지킨 의리
고인이 걸어온 민주화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야당 민주화 운동가 중에서도 가장 많은 고문 피해를 입은 분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독일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대동맥이 찢어진 상태였고, 가족들은 고문 후유증이 원인이었을 것으로 짚었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는 가택연금을 당해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어머니가 광화문에서 국밥집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형사들이 집까지 들어와 감시했는데도 오히려 형사들에게 따뜻한 밥을 권했다는 일화는 고인의 인간됨을 보여줍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도 유명합니다. 몸이 불편한 후에도 새해 첫날 세배를 빠뜨리지 않았고, YS에 대해 뒤에서 나쁜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며 끝까지 지켰습니다. 2015년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최 전 장관은 빈소에서 오열하며 고인과의 인연을 마지막까지 지켰습니다. 2016년 국립현충원 묘비 제막식에서도 눈물을 보였습니다. 이런 삶의 자취가 있기에 현재 진행 중인 최형우 조문이 단순한 형식에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여야 정치인이 함께한 조문 현장
이번 조문 현장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보낸 조기를 비롯해 정의화 전 국회의장,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 원로들의 조화가 빼곡히 늘어섰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정점식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 등 현역 정치인들도 유족을 위로했습니다. 정대철 헌정회장은 1978년 고인과 함께 김수환 추기경을 찾았을 때 고인이 박정희 정권이 곧 끝날 것이라며 자신감을 가지자고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한동훈 의원은 고인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더 늦게 왔을 것이라고 말하며 손익을 따지지 않는 자세를 배우겠다고 전했습니다. 여야를 아우른 조문은 고인의 삶이 정치적 입장을 넘어 민주화의 공통된 기억으로 자리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고인은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대선 주자로도 거론될 만큼 정치적 입지가 넓었습니다. 그만큼 중량감 있는 인물이었고, 민주화 운동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다양한 정치 세력과 교류하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조문 행렬에 젊은 정치인부터 원로까지 빠짐없이 포함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최형우 조문 소식을 더 자세히 확인하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마무리하며
고인은 한 해도 빠짐없이 김 전 대통령을 찾아 세배를 드리는 등 의리를 평생 지켰습니다. 최형우 조문 현장에는 이런 의리와 신념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화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고인이 박정희 정권 시절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고난을 견디며 만든 깊은 신념 덕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번 조문에 담긴 뜻이 널리 전해져,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 단단해지기를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최형우 조문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A: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이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입니다.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입니다.
Q: 누가 장례위원장을 맡았나요?
A: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헌정회장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Q: 고인은 왜 민주화 투쟁의 상징인가요?
A: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심한 고문과 가택연금을 겪은 대표적인 야당 정치인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동지처럼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