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 전 내무장관 별세 소식이 2026년 10월 24일 오전 전해졌습니다. 고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상도동계의 거목으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민주화 투쟁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향년 91세입니다.
| 구분 | 내용 |
|---|---|
| 별세 시각 | 24일 오전 3시 30분 |
| 별세 장소 | 중앙보훈병원 |
| 향년 | 91세 |
| 주요 이력 | 6선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 민주자유당 사무총장 |
| 장례 | 대한민국헌정회장, 4.19혁명공로자회장 |
최형우 전 내무장관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공고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동국대 학생 대표로 활동했고, 이후 4.19 6.3범청년회 사무총장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나섰습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처음 당선된 뒤 9대, 10대, 13대, 14대,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6선 정치인입니다.
고인은 초선 시절 대정부 질의에서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을 통한 영구집권 음모를 폭로했습니다. 이 일로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대공분실에 끌려가 석 달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선포 직후 다시 연행되는 시련을 겪었으며, 신군부에 의해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당시의 고초와 민주화 투쟁은 이후 상도동계의 핵심 인물로 자리잡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관련 기사는 MBN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민정부 시절과 대선주자로 불리기까지
최형우 전 내무장관은 1981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설립한 민주산악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으면서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이후 신민당 부총재와 민주당 수석부총재, 원내총무까지 역임하며 야권의 중심에서 활약했습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에 합류한 뒤에는 정무제1장관을 지냈고,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맡아 문민정부 초기의 개혁 작업을 이끌었습니다.
불도저식 추진력으로 유명했던 고인은 김동영 전 정무1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릴 만큼 영향력이 컸습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에는 신한국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9룡 가운데 한 명으로 언급될 정도로 차세대 주자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오랜 투병 생활을 시작했고, 정치적 야망을 펼치지 못한 채 조용히 재활에 전념해 왔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과 장례 절차
고인의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장과 4.19혁명공로자회장으로 엄수됩니다. 장례위원장은 동교동계의 상징인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과 YS의 분신이라 불리는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헌정회장이 함께 맡았습니다. 공동장례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수임했습니다. 상도동계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도 빈소를 찾을 예정입니다.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입니다. 장지는 국립 4.19 민주묘지입니다. 조문과 관련한 자세한 문의는 02-3410-3151로 하시면 됩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고인의 민주화 공로를 기리는 발걸음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최형우 전 내무장관 별세 소식은 단순히 한 원로 정치인의 죽음 이상의 의미를 남깁니다. 고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고락을 함께한 영원한 오른팔이자, 유신 독재에 맞서 고문을 겪으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투사였습니다. 상도동계의 거목으로서 보여준 헌신은 후배 정치인들에게도 큰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인의 삶을 통해 민주화의 소중함과 정치적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는 용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최형우 전 내무장관 별세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그가 걸어온 치열한 길을 기억하고, 후세에 제대로 전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례 일정에 맞춰 조문하고, 민주화를 위해 바친 삶을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최형우 전 내무장관은 어떤 분인가요?
A.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상도동계 핵심 인물로, 6선 국회의원과 내무부 장관을 지낸 정치인입니다. 유신 독재에 맞서 고문을 당하는 등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습니다.
Q. 장례는 어떻게 치러지나요?
A. 대한민국헌정회장과 4.19혁명공로자회장으로 치러집니다.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이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 4.19 민주묘지입니다.
Q. 최형우 전 내무장관의 정치적 유산은 무엇인가요?
A. 민주화 운동 시절의 헌신과 문민정부 초기 개혁 작업이 대표적인 유산입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원한 오른팔로 불리며 상도동계의 중심에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