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신군부 핵심 5인 모두 역사 속으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소식이 2026년 9월 13일 전해졌습니다. 신군부 핵심 5인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정 전 장관이 향년 94세로 눈을 감았습니다. 최근 건강이 악화되면서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옮긴 뒤 숨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관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그가 끝내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면서 진상 규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주요 이력 한눈에 보기

항목내용
출생1932년 대구
학력경북고, 육군사관학교 11기
주요 보직육군특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5.18 관련1980년 5월 광주 방문, 공수부대 지휘
법적 책임1997년 징역 7년 확정
이후 상황1997년 12월 특별사면, 2024년 재고발
사망2026년 9월 13일, 향년 94세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신군부 핵심 5인의 마지막 생존자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은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육군사관학교 11기를 졸업한 뒤 1955년 육군 장교로 임관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의 육사 동기였고,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과 함께 신군부 핵심 5인으로 꼽혔습니다. 하나회 인맥을 바탕으로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고, 반란 이튿날인 12월 13일 육군특전사령관에 올랐습니다.

특전사령관으로서의 선택은 이후 그의 운명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여러 차례 광주를 찾아 예하 3, 7, 11 공수부대를 지휘했습니다. 5월 27일 계엄군이 벌인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인 상무충정작전을 지원한 책임도 대법원에서 인정되었습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으로 신군부 핵심 5인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의 연관

정 전 장관은 5.18 당시 계엄령이 발동된 상황에서 공식 지휘계통에 속하지 않았다고 줄곧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그가 광주 현지에서 작전 현안을 보고받는 회의를 주재했고, 특전사령부 전용 상황실을 꾸려 운영한 사실이 여러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5월 26일 밤 광주로 내려와 재진입 작전에 필요한 물품을 구해 배분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이런 혐의로 정 전 장관은 1997년 징역 7년을 확정받았지만, 같은 해 12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함께 특별사면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5공화국에서 육군참모총장까지 지내고 대장으로 예편한 뒤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이듬해 5공 청산 여론 속에서 의원직을 사퇴했고, 1992년 다시 무소속으로 당선되며 정치적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정 전 장관은 5공화국 시절 화려한 정치적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대선 때 한 후보 측이 그를 상임고문으로 위촉하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하지만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위촉은 5시간 만에 취소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의 과거는 사회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사망으로 더 어려워진 진상 규명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4년 정 전 장관을 내란목적살인 혐의 등으로 다시 고발했습니다. 광주 재진입 작전 당시 병력을 동원하고 지휘한 사실이 확인된 데다 추가 희생자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은 2021년 조사위에 자신이 5.18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끝내 책임을 부인했습니다.

특전사령관으로서 군수와 행정 분야에만 관여했고 지휘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기 때문에 발포와 무관하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사위는 공수부대 지휘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5월 20일 처음 광주에 내려갔을 때 작전 회의를 주재했고 장세동 전 특전사 작전참모가 사회를 봤다는 복수의 진술이 확보되었기 때문입니다.

생전 정 전 장관은 자신이 공수부대 지휘계통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기억과 기록은 다른 곳을 가리켰습니다. 광주 시민들의 증언과 당시 작전 문서들은 그의 지휘 흔적을 또렷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지만, 남겨진 자료가 진실을 말해 줄 것입니다.

남겨진 과제와 시민들의 시선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소식에 5.18 유공자들은 신군부 핵심 인물로서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가 끝내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것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발포 명령의 전모와 진압 작전의 세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증언자가 사라진 셈이라 진상 규명은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밝혀졌어야 할 진실이 많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역사의 기록과 유족들의 상처가 남아 있는 한 진상 규명을 향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이후에도 조사위가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추가 규명 작업은 이어질 전망입니다.

5.18 진상 규명은 단순히 과거를 파헤치는 일이 아닙니다. 유족들이 오랜 시간 견뎌온 상처를 온전히 이해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약속입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으로 한 시대가 끝났지만, 그가 남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모두가 찾아야 할 몫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A. 최근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가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던 중 2026년 9월 13일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확한 사인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Q. 정 전 장관이 5.18과 관련해 받은 법적 책임은 무엇인가요?
A. 1997년 대법원에서 5.18 당시 공수부대를 동원해 유혈 진압한 혐의로 징역 7년을 확정받았습니다. 같은 해 12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함께 특별사면되었습니다.

Q. 정 전 장관 사망으로 진상 규명은 어떻게 되나요?
A. 신군부 핵심 5인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가 사라지면서 진상 규명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다만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확보한 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추가 규명 작업은 계속될 예정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