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안상호 친일 의혹 논란 하영 증조부 확인

최근 배우 하영이 자신의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여러 논란이 일고 있다. 하영은 여러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배경을 이야기해 왔는데, 이번에 넷플릭스 시리즈 홍보차 출연한 방송에서 증조부가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연 분이라고 소개했다. 이후 누리꾼들이 안상호를 추측했고, 소속사가 이를 확인했다.

의사 안상호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에서 의사 자격을 취득한 인물이다. 1898년 도쿄자혜의원의학교에 입학해 1902년 의술 개업 시험에 합격했다. 귀국 후에는 서울 종로에 개인 진료소를 열고 의학 강의와 왕실 진료에 참여했다. 특히 1919년 고종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일본인 의사와 함께 진료했지만 끝내 구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 사주로 독약을 올렸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명확한 증거는 없다.

구분내용
생년월일1872년
학력도쿄자혜의원의학교 졸업
의사 자격1902년 일본 의사 자격 취득
주요 활동한성의사회 회장, 고종 진료 등
논란매일신보 기사에서 일본식 생활 소개

그런데 최근 의사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1918년 12월 10일 발행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완전히 내지화된 의사 안상호 씨의 가정’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기사에 따르면 안상호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일본식 생활을 하고 있었고, 본인 스스로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고 조선 옷은 한 벌도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기록은 관련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의사 안상호

이런 기록이 오늘날까지 재조명되면서 안상호가 친일파라는 시선이 생겼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사 안상호는 일본인 의사 단체인 경성의사회에 맞서 한성의사회 회장을 맡으며 한국인 의사들의 권리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또한 고종 진료에 참여했다는 점은 오히려 왕실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매일신보 기사는 일제의 선전 의도가 담긴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안상호가 실제로 일제에 협력했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한 가지 기사나 개인의 생활 방식만으로 인물의 전체 행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특히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는 당시 시대적 상황과 다양한 기록을 교차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상호의 경우에도 친일 의혹만 강조하기보다 그가 의료계에 남긴 업적과 당시 조선인 사회에 끼친 영향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논란이 확산되면서 배우 하영에게까지 비판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하영은 단지 가족 배경을 소개했을 뿐, 증조부를 미화하거나 옹호한 적이 없다. 일부 네티즌은 “증조부가 친일파라면 하영도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지만, 이는 연좌제식 접근으로 타당하지 않다. 하영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일어난 일에 책임을 질 수 없다. 후손이 선대의 과거를 대신해 사죄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전례다.

실제로 하영의 소속사는 “안상호가 맞지만 친일 행적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히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온라인에 떠도는 내용 중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다고 강조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후손의 의사와 관계없이 별개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안상호를 판단할 때는 그가 남긴 의학적 공헌과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실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기록의 해석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주제인지 깨닫게 된다. 같은 사실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안상호의 경우에도 매일신보 기사 하나로 친일파로 낙인찍는 것은 위험하다. 반면 생전에 그가 조선인 의사로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살펴보면, 오히려 일제에 저항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복잡성을 무시한 채 단순한 선악 구도로 몰아가면 역사는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첫째, 과거 인물의 행적을 평가할 때는 당시의 사회적 맥락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둘째, 후손에게 조상의 잘못을 묻는 것은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이다. 셋째,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반드시 출처를 확인하고 추측과 사실을 구분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 없이는 또다시 억울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의사 안상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 있다. 다만 우리는 그가 한국 의학 발전에 기여한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영에 대한 지나친 비판은 그만두어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 자료가 공개된다면 안상호에 대한 명확한 진실도 밝혀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때까지는 우리가 아는 정보의 한계를 인정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FAQ를 정리해봤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참고하시길 바란다.

Q: 안상호는 실제 친일 인물인가요?
A: 아직 불명확합니다. 매일신보 기사와 같은 자료는 있지만, 명확한 친일 행각에 대한 증거는 부족해 학계에서도 단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Q: 하영이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옹호했나요?
A: 아니요, 하영은 방송에서 증조부가 의사였다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며, 소속사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어요. 옹호한 사실이 없으므로 비판 대상이 아닙니다.

Q: 안상호의 의학적 업적은 무엇인가요?
A: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했고, 귀국 후 한성의사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나눠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고종 진료에도 참여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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