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피터슨 교수는 미국의 한국학자이자 브리검영 대학교 명예교수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동양역사학을 전공하고 33년 동안 한국어와 한국 문학, 역사를 가르친 인물입니다. 그는 1965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뒤 6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을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일 방송된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서 마크 피터슨 교수는 한국 교육제도와 K팝 칼군무를 연결한 독특한 분석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 구분 | 내용 |
|---|---|
| 학력 | 하버드 대학교 동양역사학 전공 |
| 경력 |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33년간 한국학 강의 |
| 한국 인연 | 1965년 선교사로 첫 방문 |
| 핵심 주장 | 한국의 성공 비결은 천 년 된 교육제도 |
| 특별한 사연 | 한국인 두 딸을 입양한 아버지 |
이 표만 보아도 마크 피터슨 교수가 한국을 단순한 연구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는 방송에서 한국인은 공부에 대한 남다른 DNA를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K팝 아이돌이 공부는 안 하고 춤만 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러 명이 손끝과 발끝, 각도와 동선까지 정확하게 맞추는 칼군무는 엄청난 훈련과 공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목차
천 년 역사를 가진 한국 교육의 뿌리
마크 피터슨 교수는 한국의 교육열이 해방 이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생긴 현상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 년 전부터 이어진 과거제도와 인쇄 문화에서 한국 교육의 뿌리를 찾았습니다.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고, 책을 만들어 지식을 나누는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목판 인쇄를 한 나라라는 점도 그는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라 시대에는 두루마리 형태였던 기록이 그 뒤 책으로 발전했고, 금속 활자로 만든 직지심체요절 같은 책도 나왔습니다. 교육제도가 있으면 과거 시험을 볼 수 있고, 그 시험을 통해 중앙 정부가 더 튼튼해진다는 것이 마크 피터슨 교수의 분석입니다. 그는 한국을 봉건 시대가 아니라 중앙집권 국가로 보았으며, 무사가 아니라 선비가 나라를 이끈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 사회적 구조가 한국 교육열의 긴 역사를 뒷받침한다고 한 것입니다.
K팝 칼군무와 공부의 연결고리
마크 피터슨 교수는 K팝 칼군무를 단순한 춤이 아니라 공부의 결과물이라고 말합니다. 여덟 명이든 아홉 명이든 같은 동작을 미세한 각도까지 맞추려면 서로의 호흡을 읽는 법과 반복적인 훈련을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실제로 K팝 그룹의 안무를 보면 전원이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한 명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무대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연습량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런 점에서 안무 연습은 교육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눈에는 그 노력이 한국인의 교육 DNA와 이어져 보였습니다. 한국이 전쟁과 경제 위기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교육제도 덕분이라는 분석은 듣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61년 한국 사랑이 시작된 순간
마크 피터슨 교수는 1965년 선교사로 한국에 왔습니다. 당시에는 한국으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도쿄를 거쳐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한국은 가난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가난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기억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앞으로 이 어려움을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강인함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당시 한국은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어렵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마크 피터슨 교수의 눈에는 절망보다 희망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그 강인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어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고, 결국 평생 한국학을 연구하는 길로 이어졌습니다. 61년 전의 낯선 방문이 오늘날의 마크 피터슨 교수를 만든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크 피터슨 교수가 꼽은 위대한 인물
그의 한국 사랑은 인물에 대한 애정으로도 드러났습니다. 마크 피터슨 교수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이순신 장군을 꼽았습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명함집에는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말인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지갑에서 꺼내 보여준 오백 원권 지폐에도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이 그려져 있어 스튜디오를 놀라게 했습니다.
두 딸을 입양한 아버지의 이야기
마크 피터슨 교수의 한국 사랑은 연구를 넘어 가족으로 이어졌습니다. 결혼한 지 17년이 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그는 두 차례 아내가 임신했지만 끝내 아이를 품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가 입양을 생각하게 된 과정에는 아내와 함께한 오랜 기다림이 있었고, 두 차례 임신의 슬픔을 겪고도 서로를 지키며 살아온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아이들과의 만남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결국 입양을 결심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발길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러다 다시 용기를 내어 입양 기관을 찾았고, 일주일 뒤 첫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아기를 안는 순간 우리 아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보통 부모는 아이를 얻는 데 열 달이 걸리지만, 자신들에게는 17년과 7일이 걸렸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보였다고 합니다. 방송에서 두 딸과 사위, 손주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공개되자 많은 시청자가 함께 감동했습니다. 마크 피터슨 교수는 아내와 자신이 아이들을 정말 사랑했고 큰 축복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마크 피터슨 교수가 전한 메시지와 앞으로의 시선
마크 피터슨 교수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한국의 힘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천 년 넘게 이어진 교육 전통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과거 시험을 통해 인재를 뽑고, 책을 만들어 지식을 나누는 문화가 오늘날 K팝 칼군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그의 진단은 신선합니다. 61년 전 한국인 눈빛에서 본 강인함과 두 딸을 입양해 가족이 된 사연은 한국을 향한 그의 사랑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크 피터슨 교수가 방송에서 나눈 이야기 전체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한국의 교육열은 해방 이후가 아니라 천 년 전에서 시작되었다
- K팝 칼군무는 반복 훈련과 집중력이 만든 공부의 결과물이다
- 가난한 시대에도 한국인의 눈빛에서는 강인함이 드러났다
-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애정에도 한국 사랑이 담겨 있다
- 한국 사랑은 연구를 넘어 가족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우리는 이 긴 교육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미래 사회에 맞는 새로운 배움의 방식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마크 피터슨 교수가 본 한국의 저력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K팝과 같은 문화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에너지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교육의 가치를 꾸준히 돌보길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마크 피터슨 교수는 왜 한국 교육에 주목했나요?
A1 그는 천 년 전부터 이어진 과거제도와 인쇄 문화가 한국의 경쟁력을 만들었다고 보았습니다. K팝 칼군무 같은 현대 문화에서도 교육의 영향이 나타난다고 설명했습니다.
Q2 마크 피터슨 교수는 한국과 어떤 인연이 있나요?
A2 1965년 선교사로 처음 한국을 방문한 뒤 한국학을 연구했으며, 한국인 두 딸을 입양해 가족이 되었습니다. 61년 동안 한국을 사랑해 온 인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