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 씨가 최근 방송에서 자신이 4대째 의사 집안 출신이라고 밝히면서 증조부의 정체가 알려졌습니다. 그 증조부가 바로 의사 안상호 선생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는 친일 논란이 확산되었고, 결국 하영 씨 측은 공식 사과문을 내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하영 증조부 안상호에 대한 친일 논란의 핵심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 항목 | 내용 |
|---|---|
| 이름 | 안상호 |
| 출생 | 1872년 또는 1874년 서울 |
| 직업 | 의사, 한국 최초의 개업의 |
| 주요 활동 | 황실 전속의, 고종·순종 진료 |
| 친일 관련 | 대정친목회 평의원, 내선융화 가정 모델로 홍보 |
| 하영과 관계 | 증조부 |
안상호, 그는 누구인가
안상호 선생은 1872년 혹은 1874년 서울에서 태어나 1894년 관립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8년 도쿄자혜의원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이후 일본 의술개업시험에 합격해 1902년 한국 최초로 일본 의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개인 병원을 열어 황실 촉탁의로 활동하며 고종황제와 순종황제, 그리고 의친왕 등 왕실 가족을 진료했습니다. 특히 의친왕궁에는 거의 전속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부호들이 모여 사는 북촌과 남촌의 대가들에서도 안상호를 초청해 진료를 받았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는 한국 근대 의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존경받던 인물이 왜 친일 논란에 휩싸였을까요? 그 시작은 방송에서 하영 씨가 증조부에 대해 언급하면서부터입니다.

친일 논란의 근거
안상호의 친일 행적으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1916년 ‘대정실업친목회’ 평의원 활동입니다. 대정실업친목회는 일제가 내선융화를 목표로 세운 친일 단체로, 회장은 정미칠적 출신 조중응이었습니다. 안상호가 이 단체의 평의원이었다는 기록이 매일신보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1918년 12월 10일자 매일신보에는 안상호의 가정을 ‘일선동체의 모델’이라고 칭송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에서는 안상호가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완전히 일본식 생활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안상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고, 조선 옷은 한 벌도 입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부인은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내선융화 정책에 부합하는 모범 사례로 활용된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근거로 많은 사람들이 안상호를 친일파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역사학자 심용환은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역사학자 심용환의 반박
심용환은 안상호가 가입한 단체가 친일단체인 것은 맞지만, 개인의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체 가입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고종 독살설이 사실이 아닌 풍문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안상호가 독살에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안상호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일본인과 결혼한 것 자체가 친일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상호가 일제의 선전에 적극 협력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하영 증조부 안상호에 대한 평가는 단순하지 않으며, 여러 시각이 존재합니다.
고종 독살설과의 연관성
안상호는 고종황제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진찰한 의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고종 독살설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이방자 여사의 수기에는 조선총독부가 안상호에게 독살을 명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의 회고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종이 사망할 당시 이미 나이가 많았고, 독살을 주장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상호가 진료한 민영돈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되었지만, 의료적 과실이나 범죄 행위가 입증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하영 증조부 안상호를 독살범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영 측의 사과와 후폭풍
하영 씨는 처음에 논란이 불거지자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꾸어 공식 사과문을 냈습니다. 소속사는 안상호가 친일단체 평의원 명단에 포함된 기록을 확인했으며,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대응한 점을 사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3년 전 하영 씨의 친척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익명 게시판에 올린 글이 재조명되기도 했습니다. 그 글에는 “우리 증조부가 친일파일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여파로 하영 씨와 정해인 씨가 예정했던 영화 인터뷰가 취소되는 등 일정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누리꾼들은 안상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추가 증거를 요구하고 있으며,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리하며
하영 증조부 안상호는 한국 근대 의학의 선구자이지만,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 활동과 일본식 생활을 선전한 점 때문에 친일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무조건 친일파로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과거사를 판단할 때 객관적인 근거와 기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거 없는 의혹으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하영 증조부 안상호는 친일파인가요?
A: 현재로서는 친일 단체 평의원과 내선융화 홍보 등의 정황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것은 아닙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Q: 고종 독살설과 관련된 의혹은 사실인가요?
A: 고종 독살설은 풍문으로만 전해졌으며, 안상호가 독살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Q: 하영 씨는 왜 사과했나요?
A: 하영 씨 측은 처음에 친일 논란을 부인했지만, 이후 안상호가 친일 단체 평의원 명단에 포함된 기록을 확인하고 검증 부족을 인정하며 사과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