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故) 장진영 씨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2009년 9월 1일, 위암 투병 끝에 향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한 그녀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계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오늘은 장진영 17주기 추모를 맞아 그녀의 눈부신 연기 인생과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마지막 순간,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따뜻한 온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의 가슴에 ‘국화꽃 향기’처럼 진하게 남아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목차
미스코리아에서 충무로의 별이 되기까지
장진영 씨는 1992년 미스코리아 충남 진에 당선되며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1997년 드라마 ‘내 안의 천사’를 통해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순풍산부인과’, ‘남자 셋 여자 셋’ 등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고, 영화 ‘자귀모’, ‘반칙왕’ 등을 통해 스크린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것은 2001년 영화 ‘소름’이었습니다. 이 작품 하나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스페인 시체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휩쓰는 쾌거를 이루며 ‘연기파 배우’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잠시 멈춰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 보면, 그녀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박해일 씨와 함께 한 영화 ‘국화꽃 향기’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가슴 시린 멜로 연기의 정수로 손꼽히며, 영화 ‘싱글즈’에서는 두 번째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파워를 증명했습니다. 2005년 영화 ‘청연’에서는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 역할을 맡아 첫 단독 주연을 맡기도 했으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대한민국영화대상 여우주연상을 차지해 명실상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배우로 우뚝 섰습니다.

병마와의 싸움, 그리고 그 곁을 지킨 사랑
200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것은 2008년 9월이었습니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녀는 2007년 드라마 ‘로비스트’를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접고 투병에 들어갔습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녀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1년 만인 2009년 9월 1일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향년 37세, 너무도 이른 이별이었습니다. 팬들과 동료 배우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 힘든 시기에 그녀의 곁을 지킨 사람은 연인 김영균 씨였습니다. 장진영 17주기 추모를 이야기할 때 그녀의 남편이었던 김 씨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 씨는 투병 중에도 변함없이 헌신적으로 그녀를 간호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인 2009년 8월 29일, 두 사람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마쳤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되고자 했던 그녀의 의지와, 그 선택을 존중하고 끝까지 곁을 지킨 남편의 사랑은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별 후 김 씨는 두 사람의 애틋한 이야기를 담은 추모 서적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을 펴내기도 했으며, 이 책은 많은 독자들의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는 따뜻한 유산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뜻을 기리는 따뜻한 손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인의 부친 장길남 씨는 암 투병 중에도 모교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던 딸의 진심을 담아 2010년 3월 사재 11억 원을 들여 장학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꾸준히 장학금 기부에 앞장서며 딸의 이름으로 선행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2011년 5월에는 고인의 고향이자 유해가 안치된 전라북도 임실군에 ‘장진영 기념관’이 문을 열어, 그녀의 삶과 작품 세계를 기리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고인의 아버지 장길남 씨는 딸의 15주기 행사를 준비하러 기념관을 다녀오던 길에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시작한 장학사업은 고인의 이름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진영 17주기인 올해에도 많은 대중과 팬들은 그녀를 추모하며, 그녀가 남긴 작품과 따뜻한 온기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짧았지만 눈부셨던 그녀의 삶은 단순한 배우를 넘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랑을 실천한 아름다운 사람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 곁에 영원히 남은 별, 장진영을 기억하며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에 우리는 장진영이라는 배우의 무한한 가능성을 목격했습니다. ‘소름’을 통해 보여준 강렬한 카리스마, ‘국화꽃 향기’에서의 섬세한 감정 연기, ‘싱글즈’에서 보여준 도시적인 여성의 모습까지. 그녀는 어떤 역할이든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해 내는 독보적인 능력을 지녔습니다. 만약 그녀가 건강하게 활동을 이어갔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지, 팬들의 마음에는 영영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진영 17주기를 맞아 그녀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늘의 별이 된 그녀의 연기를 되새기며, 짧았지만 뜨거웠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그녀가 남긴 ‘국화꽃 향기’는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진하게 퍼져 나갈 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배우 장진영 씨의 주요 작품으로는 무엇이 있나요?
A: 드라마 ‘내 안의 천사’, ‘순풍산부인과’, ‘로비스트’가 대표적이고, 영화로는 ‘소름’, ‘국화꽃 향기’, ‘싱글즈’, ‘청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이 있습니다. 특히 ‘소름’과 ‘싱글즈’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했습니다.
Q: 장진영 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작품은 무엇인가요?
A: 2007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 ‘로비스트’가 그녀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 이후 2008년 9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Q: 고인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기념 공간이나 재단이 있나요?
A: 네, 전라북도 임실군에 ‘장진영 기념관’이 있으며, 고인의 부친이 설립한 장학재단이 지금도 장학금을 지원하며 선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