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일가 가계도 청산되지 않은 연대기

단순한 족보가 아니다, 시간을 초월한 브리핑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슈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이완용’이라는 이름입니다. 2005년 오마이뉴스의 보도는 조부와 부친, 손자까지 3대가 일제에 충성하며 작위를 세습한 대표적인 친일파 집안이라고 이완용 일가의 가계도를 지목했습니다. 당시 이 기사는 단순한 가족사를 넘어, 해방 후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죠. 2010년 MBC가 전한 친일재산조사위원회 활동 종료 소식은 또 다른 숙제를 남겼습니다. 4년간의 조사와 환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빙산의 일부만 드러났을 뿐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는 당시 사회가 가진 청산 의지의 방증이자,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단면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우리가 여전히 이완용 일가 가계도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것이 지나간 역사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 오롯이 ‘우리 사회’를 비추는 현재진행형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완용 일가 가계도
이완용 일가 가계도

가계도라는 이름의 각본, 그 피할 수 없는 무게

왜 하필 이 가계도가 문제일까요? 단순히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이완용 일가의 가계도는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특권 세습의 고전적인 예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완용의 아들 이항구와 손자 이병길은 조부의 ‘후(侯)작’을 단순히 물려받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경제 분야에서 지배 엘리트로 군림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델이 단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910년 경술국치, 1945년 해방, 1950년 한국전쟁, 1987년 민주화 항쟁, 2016년 촛불혁명 그리고 현재 2026년까지 어느 순간을 봐도 사회 각 분야의 최정상권에는 자주 만날 수 있는 구도이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체계적인 계획이 없었다고 보기 힘든 수준입니다.

팩트와 제도 사이, 정의의 부재 혹은 공백

의연하게도 우리 사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피 눈물을 흘렸습니다. 2005년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친일재산환수법)은 그 대표적인 업적이며 동시에 상처를 꿰매는 아픔을 동반합니다. 그럼에도 불공정은 전염보다 빠르게 진화합니다. 헌법소원, 친인척 명의의 재산 증식, 비밀 유지 관행은 합법적 의심 속에서도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했거나 공유된 냉소에 머물게 합니다. 일례로 2025년 참사 이후 기존 기득권 관행이 그대로 유지됐고, 이는 공공 질서와 신뢰에 못지않은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 균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표로 보는 차별의 연장선

아래의 표는 단순하지만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눈에 보이는 제도와 보이지 않는 힘의 연결고리입니다.

시기주요 사건공간/여운
2005~2006정의의 분출, 기사와 법률 통과역사 바로 세우기, 저항의 피로감
2008~2011헌법소원, 위기 극복을 위한 싸움에서 동지에서 적으로 전락쉽지 않음에 대한 체념
2016~2017법치주의의 재탄생 혹은 말살배제의 논리, 위안과 냉소
2024~2026새로운 코드, 전략적 재정의
되풀이되는 신상 털기인가

과거, 현재 그리고 우리의 역할

어디선가 약해질 수 있었지만,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물쇠와 못이라는 냉혹한 진실과 마주합니다. 과거에 무분별한 모습은 분명히 악했음은 분명하지만 세부 내용을 조정해서라도 발견하고 잠식하면 우리 생활의 근간을 뒤흔듭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매우 전문적인 척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 모두가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법, 혹은 사는 법을 배우다

결국 반전은 쉽지 않습니다. 복잡한 현안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흔들리는 가운데 확실한 것은, 억지로 만든 낙관도, 체념도 아닌 담판을 준비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건 지우지 못한 부조리 끝에 찾아올 후폭풍에 대한 깊은 고민입니다. 현재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먼저 돌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FAQ

Q: 왜 지금까지도 법으로 칭하는 사항을 만날 수 없나요?

A: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 차원의 명확한 손해가 있어도 개인의 깊은 신념을 어긋내기 힘들 듯이, 충분히 단결하기 어려울 만큼 첨예한 배경에는 감정적 반발과 함께 지루하게 수를 읽어내는 관성이 자리 잡았습니다.

Q: 어떤 말 대신 무엇보다 시민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A: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가장 큰 무기는 작심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정말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잊지 않기, 관심을 끈기 있게 대화로 연결하는 일 등이 가장 좋은 시작입니다. 이는 매우 냉철하면서도 단단한 민주주의를 향한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Q: 이 손실을 어떻게 하나요?

A: 스스로를 소진하지 말아야 합니다. 큰 그림 이해를 전제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 앞에, 충분치 않은 시간을 저주하기 시작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오늘을 살아내는 일, 그 자체가 이 땅에서 답을 찾는 모범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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