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수 전범선이 자신의 5대조가 이인직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인직은 한국 최초의 신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완용의 통역관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인직과 이완용 통역관의 관계, 그리고 친일파 후손으로서의 고백이 주는 의미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이인직이 누구인지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인직 |
| 주요 활동 | 소설가, 친일반민족행위자 |
| 대표 작품 | 혈의누, 은세계 등 |
| 친일 행적 | 이완용 통역관, 일본군 통역, 을사조약 관련 활동 |
| 등재 기록 | 친일인명사전,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
이인직은 국어 교과서에서 ‘최초의 신소설 작가’로 소개되면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실제 행적은 친일파로서의 면모가 훨씬 두드러집니다. 특히 이완용의 통역관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일본과 가까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가수 전범선은 지난 4월 유튜브 채널에서 자신의 외가 5대조가 이인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조차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실을 성인이 될 때까지 몰랐다고 합니다. 전범선은 귀국 후 ‘헐버트 재단’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한국 근대화와 항일 운동에 기여한 호머 헐버트 박사의 삶에 감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아들에게 비장한 표정으로 “너의 집안이 어떤 집안인 줄 알고 있냐”고 물으며 이인직이 조상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전범선의 어머니는 이인직이 “그냥 친일파가 아니라 대단한 친일파”였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인직은 이완용의 통역관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 통역도 맡았으며, 을사조약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일본인 여성과 재혼하면서 기존 가족을 버렸고, 그로 인해 전범선의 가족은 친일파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부끄러움 속에 과거를 숨기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전범선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충격을 받았지만, 역사 전공자로서 이 문제를 직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인직의 소설을 모두 찾아 읽으며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했지만,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명백히 선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토대로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독자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범선의 고백은 단순한 유명인의 과거 고백이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조상의 잘못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회피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치유하려는 그의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반면, 최근 배우 하영의 경우 정반대의 태도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영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증조부가 ‘의사 DNA’라며 자랑스럽게 소개했지만, 실제 증조부 안상호는 친일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이었다는 기록이 드러났고,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가정이 동화정책 모범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하영은 인터뷰를 취소하고 방송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하는 등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며 논란을 키웠습니다.
같은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실을 마주했지만, 전범선은 솔직하게 고백하고 책을 통해 치유의 과정을 보여준 반면, 하영은 숨기고 미화하려다 더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 두 사례는 우리에게 과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줍니다. 숨긴다고 해서 과거가 사라지지 않으며,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는 점 말입니다.
이인직 이완용 통역관의 의미
이인직이 이완용의 통역관으로 활동한 것은 그가 일본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통역관은 단순히 언어를 번역하는 역할을 넘어, 일본의 정책을 한국에 전달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인직은 이러한 위치에서 일본의 식민 통치를 돕는 데 기여했으며, 이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등재될 정도로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인직이 단순한 악인이 아닌,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그 선택이 옳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역사를 평가할 때 당시의 맥락을 고려하고, 더 나아가 현재 우리의 행동이 미래에 어떻게 기억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범선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의 고백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를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교훈을 얻을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친일파 후손 고백이 주는 교훈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연예인과 같은 공인에게는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범선은 자신의 유튜브 출연을 통해 우연히 고백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가 그동안 역사학을 전공하고 헐버트 재단에서 활동하며 보여준 행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결국 자신의 가족사와 마주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친일파 후손들이 과거를 숨기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역사의 문제가 남아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단순히 가족의 죄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며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합니다.
전범선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서를 집필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책에는 끝내 이인직을 직접 다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솔직한 고백은 독자에게도 여운을 남기며,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보여줍니다.
이인직 이완용 통역관이라는 키워드는 단순히 한 인물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역사의 그늘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그늘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줍니다. 전범선과 하영의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역사를 숨기는 것은 더 큰 상처를 남기고, 정면으로 대면할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마무리
이번 고백 사건을 통해 우리는 이인직과 이완용 통역관의 관계, 그리고 친일파 후손들의 고민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 계속 영향을 미치는 살아있는 이야기입니다. 전범선처럼 솔직하게 마주하고 치유하는 태도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서 친일파 문제에 대한 논의가 더욱 성숙하게 이루어지길 바라며, 우리 각자가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인직과 이완용 통역관의 이야기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느낀 점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보시길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인직은 왜 이완용의 통역관이 되었나요?
A: 이인직은 일본어에 능통했고, 일본과의 협력 관계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 이완용의 통역관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일본의 식민 통치 정책을 돕는 활동을 하였고, 결국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록되었습니다.
Q: 전범선은 왜 이 사실을 고백하게 되었나요?
A: 전범선은 유학 시절 헐버트 박사에 감화되어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던 중,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5대조가 이인직이라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신의 유튜브 출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백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역사서 집필과 치유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Q: 친일파 후손 고백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친일파 후손 고백은 단순히 개인적인 과거 고백을 넘어, 우리 사회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교훈을 얻을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