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상업고등학교는 많은 사람에게 취업 중심의 상업 교육 기관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이 학교 출신과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정치, 야구, 문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준 인물들이 많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어우홍 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그리고 글쓰기의 길을 열어준 김태홍 선생의 이야기는 부산 상업고등학교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목차
부산 상업고등학교가 만든 특별한 연결고리
이 학교를 한 줄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래 표에서 보는 것처럼 정치와 스포츠, 문학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 분야 | 인물 | 이야기 |
|---|---|---|
| 정치 | 노무현 | 1963년 농협 취업을 위해 입학했지만 시험에서 떨어졌고 이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
| 야구 | 어우홍 | 부산 상업고등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세계대회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
| 문학 | 신영복 | 재학 시절 김태홍 선생의 권유로 글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
부산 상업고등학교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길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63년 부산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목표는 농협에 취직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나오면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농협 입사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이후 그는 법학 공부에 뛰어들어 9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인권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정치 인생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첫 선거에서 당선된 지 1년 만에 의원직을 내려놓았고, 이후 여러 번 낙선했습니다. 그가 치른 선거는 모두 7번이었고 그 가운데 4번은 졌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부산 상업고등학교에서 시작한 꿈이 여러 실패를 거쳐 큰 결과로 이어진 셈입니다.
평전으로 보는 노무현의 기록
최근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쓴 평전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 과정부터 대통령 재임 시절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대통령 곁에서 보고 들은 대로만 쓰라는 당부를 받았고, 그 원칙을 바탕으로 책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평전에는 화려한 성공보다 실패와 방황이 더 많이 등장합니다. 그 모습이 오히려 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평전의 바탕이 된 자료도 남다릅니다. 저자가 청와대에서 남긴 포켓수첩만 600여 권, 파일은 1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노무현사료관에 보관된 비공개 기록 160여 개가 더해졌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옆에 기록자를 붙여 두는 방식으로 권력이 스스로를 경계하게 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야구 명장 어우홍 감독과 부산 상업고등학교
야구계에는 지도자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어우홍 감독이 있습니다. 그는 부산 상업고등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1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이듬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정상으로 이끌었습니다. 김재박, 최동원, 한대화, 선동열 같은 선수들과 함께 일본을 꺾은 그 순간은 한국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승리였습니다.
어우홍 감독은 현역 투수로 동래중과 성균관대를 거쳐 실업야구단에서 뛰었고, 은퇴 후 부산 상업고등학교와 경남고, 동아대에서 후배들을 가르쳤습니다. 이후 프로야구 출범 후에는 MBC 청룡과 롯데 자이언츠를 이끌며 통산 177승을 기록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기린장과 세계야구연맹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오랜 기간 아마추어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김응용, 강병철, 허구연, 김용희 같은 야구인들을 길러낸 것도 큰 업적입니다. 그래서 부산 야구의 대부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그는 2026년 8월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부산 상업고등학교에서 시작된 야구 인연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문학의 씨앗을 심은 김태홍 선생
부산 상업고등학교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시인 김태홍 선생은 이 학교에 재직할 때 학생 신영복에게 백일장에 나가 보라고 권했습니다. 이 짧은 권유가 신영복이 글의 세계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태홍 선생은 이후 부산고등학교에서 가르쳤고, 1960년 4월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맞서다 숨진 김주열 학생의 모습을 시로 남겼습니다. 학생의 시신에서 최루탄이 발견된 참혹한 현실을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자유를 향한 외침을 시에 담았고, 이 때문에 해직과 구금을 겪기도 했습니다.
김태홍 선생은 안장현 선생과 함께 시 동인회에서 활동하며 전쟁을 저주하고 인간 회복을 절규하는 시를 썼습니다. 1950년대 부산 지역 교사 시인들의 흐름 속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의 문을 열어준 셈입니다.
부산 상업고등학교가 남긴 교훈
이 학교는 특정 분야의 인재만 배출한 곳이 아닙니다. 정치와 스포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한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입학 당시의 목표가 좌절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농협 입사시험에 떨어졌지만 그 경험이 새로운 길을 찾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우홍 감독은 부산 상업고등학교에서 지도자로서의 출발점을 만들었습니다. 김태홍 선생은 학생 한 명의 재능을 발견하는 작은 관심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드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한 학교의 역사가 단순한 졸업생 명단이 아니라 다양한 인생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학교 출신 인물들의 다양한 활약이 계속해서 알려지기를 기대합니다.
자주 궁금해하는 이야기
Q1. 부산 상업고등학교는 어떤 곳인가요.
A1. 상업 교육과 취업을 목표로 한 학교로 출발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야구계 인물들도 이 학교와 인연이 있습니다.
Q2.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상업고등학교에 다닌 이유는 무엇인가요.
A2. 농협에 취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입사시험에서 떨어진 뒤 법학 공부를 시작했고, 이후 정치와 법조계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Q3. 어우홍 감독은 어떤 공로가 있나요.
A3. 부산 상업고등학교에서 지도자를 시작했고,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야구 지도자를 배출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