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논란이 연일 화제입니다. 역사강사 배기성이 관련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인물로 지목되며 직접 나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번 사건은 단순한 연예인 가족사 이상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전승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핵심 키워드인 배기성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의 전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목차
논란의 시작, 4대째 의사 집안 발언
지난 7일 KBS2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영이 “증조부께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고 말하며 증조부가 4대째 의사 집안의 시초라고 소개했습니다. 이 방송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하영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의사 안상호라는 주장이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역사강사 배기성은 자신이 이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는 하영의 본명이 안하영이라는 점과 공개된 가족사가 안상호의 생애와 일치하는 점을 근거로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배기성은 평소 강의에서 안상호의 행적을 다뤄왔다고 합니다.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조선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일본 유학 이후 보인 행적은 당시 일본 언론에 친일 인사로 소개되며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안상호가 이완용을 저격한 이재명 의사의 총에 맞은 이완용을 수술해 살려낸 의사 중 한 명이라는 사실과, 고종이 1919년 쓰러졌을 때 진료에 참여한 정황이 알려지면서 친일 의혹이 더욱 커졌습니다.
친일 행적의 구체적 증거
배기성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안상호의 친일 행적들은 충격적입니다. 1918년 매일신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안상호는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은 조금도 못 먹는다”며 “자녀들을 완전히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어서 불편한 것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내선일체의 모범사례’로 소개될 정도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안상호가 속해 있던 대정실업친목회는 고문이 이완용, 회장이 민영기였습니다. 이 단체는 일제의 식민지배에 순응하는 여론을 형성하고 산업 진흥을 명목으로 설립된 단체였습니다. 3.1운동 이후에는 조선인 상류층 친일 단체로 변질되었습니다. 배기성은 “일본에서 배워와서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하라고 했더니, 같이 간 동료는 실제로 그렇게 했는데 안상호는 일본화에 스스로 빠져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영의 사과와 배기성의 추가 비판
처음 하영 측은 관련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추가 확인을 거친 뒤 입장을 정정하며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답변해 혼란을 드렸다”고 사과했습니다. 하영도 직접 자필 사과문을 공개하며 “가족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며 “이번 기회에 관련 자료를 직접 확인하면서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여러 자리에서 가족의 자랑처럼 이야기한 것을 반성한다”고 말했습니다.
배기성은 하영의 사과에도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하영이 33세라는 점을 언급하며 “알 거 다 아는 사람이다. 어려서 그런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어 “인터넷 조금만 찾아보면 수많은 기사와 자료가 나온다. 그런데 방송에서 우리 집안이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자랑하는 것은 진실을 알았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진실을 안다면 부끄러워서 그런 소리를 못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이유
일각에서는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점을 들어 ‘친일파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역사학자 심용환도 이 점을 근거로 “안상호를 친일파로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배기성은 “친일인명사전은 주로 관직과 경제인 위주로 수록했다”며 “의사나 전문직 종사자들은 상대적으로 누락된 경우가 많다”고 반박했습니다.
또한 ‘매불쇼’ 측은 “안상호의 가족이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내선일체의 모범사례로 인터뷰까지 실렸는데, 이를 친일이라 하지 않으면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배기성은 고종 독살설과 관련해서도 “안상호가 고종이 쓰러진 당일 진료에 참여했지만 그 3시간 동안의 미스터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그래서 당시부터 안상호에게 고종 독살 연루설이 돌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연예인의 실수로 치부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집안 어른들에게만 전해 들은 이야기가 얼마나 왜곡되어 전승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역사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배기성은 “내가 친일파를 강의하면서 느끼는 것은, 밥상머리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조상의 이야기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할아버지가 고종 황제를 진료했고 조선 최초의 양의원을 세웠다는 것만 기억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행위에 대해서는 ‘당시에 전문직이니까 그렇게 됐겠지’라고 넘어가는 태도가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조상의 업적을 자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자랑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내가 말하는 조상의 이야기가 과연 올바른 역사적 사실인지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번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이들에게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습니다.
하영의 입장은 왜 번복되었나
하영 측은 처음에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한 이유에 대해 “증조부에 대해 가족에게 들은 내용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확인이 늦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배기성이 제시한 자료들이 인터넷과 실제 관련 기사들을 통해 확산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결국 입장을 바꿔 사과하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배기성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하영이 방송에서 밝힌 내용만 보고도 구체적인 인물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증조부의 이름과 일본 의사 자격증 취득 시기, 한양에서의 병원 개원, 고종 진료 등의 조건을 조합해 보면 안상호가 유일하게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배기성의 분석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언론을 통해 빠르게 퍼지며 논란에 불을 붙였습니다.
역사 강사 배기성의 경고
배기성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조상을 자랑하는 건 좋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특히 연예인처럼 대중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가족사를 방송에서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배기성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영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누리꾼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일부는 “가족사는 과거의 일이라 본인 책임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 다수는 “33세 성인이면 자신이 뿌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어떤 반응이든 이번 사건이 단순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마무리하며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한 것은 분명합니다. 가족의 자랑스러운 이야기도 반드시 검증된 사실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뿌리가 되는 역사는 개인의 영광보다 공동체의 기억이 되어야 합니다. 배기성은 “어린 시절 밥상머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편향된 기억을 만들고, 그게 성인이 되어도 그대로 남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배기성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을 계기로 우리 역사를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중한 가치를 올바르게 전승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 Q: 하영의 증조부는 정말 친일파인가요?
A: 안상호는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고종을 진료하는 등 의사로서의 업적도 있지만, 1918년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내선일체를 강조한 발언과 이완용을 수술해 살린 점, 대정실업친목회 활동 등 친일 행적으로 평가 받는 기록들이 여럿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지만,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입니다. - Q: 배기성은 어떤 사람인가요?
A: 배기성은 역사 강사로, 주로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행적을 연구하고 강의해 온 인물입니다. 이번 하영의 증조부 논란을 처음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기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 Q: 하영의 사과 이후에도 논란이 이어지나요?
A: 하영은 자필 사과문을 통해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배기성 등 일부 인물들은 “33세 성인이 모를 나이가 아니다”며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반응이 엇갈리며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