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정 열사 묘역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안에 자리합니다. 1991년 5월 25일,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던 스물여섯 살 대학생 김귀정은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김귀정 열사 묘역은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 구분 | 내용 |
|---|---|
| 이름 | 김귀정 |
| 생몰 | 1966년 8월 출생, 1991년 5월 25일 사망 |
| 학교 | 성균관대학교 불문과 |
| 활동 | 심산연구회 회장, 학생추진위원회 정책 담당 |
| 묘역 |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
목차
가난 속에서도 빛나던 청년
김귀정은 1966년 8월, 아버지 김복배와 어머니 김종분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은 번번이 실패했고, 어머니는 서울 왕십리 행당시장 앞에서 노점을 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습니다. 5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킨 어머니의 노점이 가족의 버팀목이었습니다. 가난했지만 김귀정은 밝고 명랑했고, 달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은 대부분 모범생으로 성장해 사회에서 제 몫을 다했습니다. 그 시절 다져진 끈기와 강단은 훗날 그가 운동가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198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불문과에 입학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중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동차 정비소 사무직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3년을 보낸 뒤, 1988년 성균관대학교 불문과에 다시 입학했습니다. 성균관대에서 김귀정은 통일연구동아리인 심산연구회에 들어가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동기들보다 두세 살 많았던 그는 동아리에서 누나 같은 존재였습니다. 대학본부 점거농성 때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서 갖다주고, 엠티에는 반찬을 바리바리 싸 와서 동기들을 먹였습니다.
2학년이 되면서 심산연구회 회장을 맡은 김귀정은 운동가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도 그는 주변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소리 없이 주변을 챙기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동아리연합회 활동까지 하며 자신을 단련해 나갔습니다. 1991년 4월에는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성균관대학교 학생추진위원회의 정책 담당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1991년 봄, 잔인했던 그날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신입생 강경대 학생이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 과정에서 경찰의 집단 구타로 숨졌습니다.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져갔고, 그해 5월 모두 11명의 학생과 노동자,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5월 25일, 김귀정은 전날 밤 후배들과 심산연구회 방에서 통일정책 초안을 두고 밤새 토론한 뒤 집에 돌아와 잠을 청했습니다. 오후 2시에 깨워달라고 부탁하고 잠든 그를 어머니가 깨웠습니다. 김귀정은 잘 입지 않던 치마를 입고 나갔다가 금세 돌아와 청바지로 갈아입고 다시 나섰습니다. 그날은 공안통치 민생파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제3차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퇴계로 일대, 수만 명의 시위대와 수천 명의 전투경찰이 뒤섞였습니다. 경찰은 시위대를 양쪽에서 압박하며 좁은 골목길로 몰아넣었고, 최루탄과 사과탄을 터뜨리며 방패와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했습니다. 김귀정은 골목길에서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잔인했던 1991년 봄의 마지막 희생자, 그의 나이는 스물여섯이었습니다.
김귀정 열사 묘역과 어머니의 50년

김귀정 열사 묘역은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이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묘역을 찾는 이들은 김귀정이 걸어간 길을 되새기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마주하게 됩니다. 30주기인 2021년에는 추모제와 추모 콘서트, 추모 다큐멘터리 상영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묘역을 방문할 때는 5월 25일 전후로 열리는 추모제 일정을 미리 확인하면 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딸을 먼저 보낸 어머니 김종분은 그 후로도 50년 넘게 왕십리에서 노점을 이어갔습니다. 2021년, 김진열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왕십리 김종분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습니다. 영화는 김종분의 현재 삶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노점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터전이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고 즐거움을 찾는 평생의 일터였습니다.
영화 후반부에는 김종분이 딸의 묘역을 찾아 오열하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평소에도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 딸을 보러 간다고 했습니다. 촬영팀이 따님 한번 보러 가실래요라고 물었을 때, 김종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촬영감독은 삼각대만 세워두고 모두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오랜만에 딸과 단둘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30주기를 넘어 계속되는 기억
성균관대학교 민주동문회인 성민동은 4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로, 그동안 열사 추모 사업과 동문 자녀 장학사업을 이어왔습니다. 최근에는 가칭 성균민주재단 설립을 준비하며 사업의 안정성을 꾀하고 있습니다. 5억 원을 목표로 모금한 결과 2026년 5월 현재 1억 2천여만 원이 모였습니다.
재단 설립이 궤도에 오르면 성균관대 재학생이 참여하는 최동독서상이나 김귀정5분영화제 같은 프로그램을 열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습니다. 20대 청년과 함께 민주주의 가치를 이어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7월 중순에는 성민동의 연극단 금잔디가 강제징집으로 의문사한 이윤성 열사를 다루는 창립공연을 올릴 예정입니다.
민주주의는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김귀정 열사 묘역은 단순한 무덤이 아닙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스물여섯 해의 삶, 가난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청년,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던 운동가의 정신이 깃든 공간입니다. 어머니 김종분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밤새 뭘 하고 들어왔는지 오자마자 자빠져 자드라고, 오후 2시에 깨워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평범한 일상의 기억이 지금 우리에게 남아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김귀정 열사 묘역을 찾는 일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켜왔는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앞으로도 성민동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지키며 민주주의의 기억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김귀정 열사 묘역은 어디에 있나요?
A. 경기도 이천에 있는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안에 있습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열사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누구나 찾아가 추모할 수 있습니다.
Q. 김귀정 열사는 어떤 분인가요?
A. 성균관대학교 불문과에 다니던 학생으로, 1991년 5월 25일 노태우 정권 퇴진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숨졌습니다. 당시 나이는 스물여섯이었습니다.
Q. 김귀정 열사를 추모하는 행사가 있나요?
A. 매년 5월 25일 전후로 추모제가 열립니다. 30주기인 2021년에는 추모 콘서트와 다큐멘터리 상영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고, 성균관대 민주동문회에서는 김귀정5분영화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